에메랄드 빛 아레강이 U자 형태로 감싸 안은 아름다운 도시, 베른(Bern). 스위스의 수도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도시는 8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중세의 정취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유럽의 숨겨진 보석입니다. 취리히와 제네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베른은 여유로운 시간이 흐르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진정한 스위스다운 도시입니다.
베른의 역사: 곰이 이름을 준 도시
베른은 1191년, 군사 요새로서 체링겐가의 베르톨트 5세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베른이라는 이름은 '곰'을 의미하는 독일어 'Bär'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베르톨트 5세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사냥했던 동물이 곰이었기 때문에 도시 이름을 베른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1220년에 자유 도시가 된 베른은 1353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하여 '8주 동맹'의 일원이 되었고, 이후 탄탄한 발전을 거쳐 1848년 스위스 연방 헌법이 제정되면서 스위스의 수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베른은 중세 시대부터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로, 아레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을 활용해 자연적인 방어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잘 보존된 중세 건축물들이 인정받아 1983년 베른 구시가지는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베른의 아름다운 경관: 에메랄드 빛 아레강에 감싸인 도시
베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도시를 U자형으로 감싸고 흐르는 에메랄드 빛의 아레강(Aare River)입니다. 이 강은 도시에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많은 현지인들이 아레강에서 수영을 즐기는데, 이는 스위스 사람들의 특별한 문화 중 하나입니다. 급류처럼 빠르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리버 서핑(River Surfing)'은 베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입니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공원들은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아레강 주변으로는 숲, 정원,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어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됩니다. 특히 강 건너편 언덕에 자리한 장미공원(Rosengarten)은 베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입니다. 400여 종의 장미와 함께 알프스 산맥까지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은 베른 여행의 필수 코스입니다.
베른 구시가지: 유네스코가 인정한 중세의 보석
베른의 구시가지는 스위스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경관을 자랑합니다. 6km가 넘는 아케이드(Lauben)로 연결된 거리는 비가 오는 날에도 쇼핑과 산책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아케이드 아래에는 다양한 상점, 레스토랑, 바가 자리하고 있어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입니다.
베른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치트글로게(Zytglogge) 시계탑은 13세기 초에 건설된 베른의 대표적인 상징물입니다. 원래는 도시의 서쪽 관문이었다가 나중에 여성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시간마다 인형들이 움직이는 기계식 쇼가 펼쳐지는 이 시계탑은 베른의 정확함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또한 베른 대성당(Berner Münster)은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성당 중 하나로, 높이가 무려 120m에 달합니다. 고딕 양식의 이 대성당은 15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완공까지 약 3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성당 꼭대기에 올라가면 베른의 붉은 지붕과 아레강,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알프스 산맥까지 볼 수 있습니다.
베른의 독특한 상징: 곰 공원(Bärenpark)
베른의 상징인 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곰 공원(Bärenpark)입니다. 도시의 이름이 '곰'에서 유래된 만큼, 베른은 16세기부터 살아있는 곰을 보유해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쟁의 전리품으로 데려온 곰이 도시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이후 여러 단계에 걸쳐 곰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2009년에 새롭게 단장한 현재의 곰 공원은 6,000평방미터가 넘는 넓은 공간에 자연 환경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아레강 기슭에 자리한 이 공원에서는 베른의 상징인 곰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이렇게 야생 동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은 베른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천재의 발자취: 아인슈타인 하우스
베른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의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킨 도시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1902년부터 1909년까지 베른에 거주했으며, 그 중 일부 기간을 크람가세(Kramgasse) 49번지에 위치한 현재의 아인슈타인 하우스에서 보냈습니다.
특별히 1905년, 그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베른에서였습니다. 당시 26세였던 젊은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아파트는 현재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그의 생활과 연구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전시품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하우스를 방문하면 그가 사용했던 가구들과 개인 소지품, 문서 등을 통해 천재 물리학자의 일상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베른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생산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베른의 문화와 전통: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
베른은 스위스 도시 중에서도 가장 스위스다운 도시로 평가받습니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소중히 지켜온 도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베른은 스위스의 정통성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매년 다양한 전통 축제가 베른에서 열리는데, 특히 1937년부터 시작된 '베른 인 블루멘(Bern in Blumen)'은 시민들이 발코니에 제라늄 꽃을 장식하는 전통 행사입니다. 이외에도 오니온 마켓(Zibelemärit)이라 불리는 양파 축제는 11월 네 번째 월요일에 열리며, 양파로 만든 다양한 장식품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베른의 유명한 행사입니다.
또한 베른은 맥주 문화가 발달한 도시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맥주 수도'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지역 맥주 양조장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맥주 양조 코스나 '크래프트 비어 페스티벌' 등 맥주 관련 행사도 많이 열립니다.
베른의 맛: 스위스 전통 요리
스위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베른은 최고의 선택입니다. 오래된 맛집들이 구시가지 아케이드 아래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전통 스위스 요리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퓨전 음식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베른에서 꼭 맛봐야 할 전통 음식으로는 '뢰스티(Rösti)'가 있습니다. 감자를 갈아서 팬에 바삭하게 구운 이 요리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가정식으로, 베른 지역에서 특히 유명합니다. 또한 치즈 퐁듀(Fondue)와 라클렛(Raclette)도 베른에서 즐길 수 있는 전통 스위스 요리입니다.
베른의 명물 중 하나인 '베른 레뷔(Berner Lebkuchen)'는 꿀과 향신료를 넣어 만든 진저브레드 쿠키로,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베른의 전통 디저트입니다. 또한 초콜릿 애호가라면 베른의 수제 초콜릿 상점들을 방문해 스위스 최고의 초콜릿을 맛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콘하우스켈러(Kornhauskeller)는 베른의 대표적인 전통 레스토랑으로, 압도적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베른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17세기에 곡물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이 레스토랑은 그 자체로 베른의 역사적 명소이기도 합니다.
베른의 교통과 여행 팁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답게 교통이 매우 발달되어 있습니다. 스위스 철도망의 중심지 중 하나인 베른은 취리히, 제네바, 루체른 등 주요 도시와 고속 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베른 중앙역(Bern Hauptbahnhof)은 구시가지와 가까워 관광하기에 매우 편리합니다.
베른은 도시 크기가 작아 대부분의 명소를 걸어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시내 대중교통도 잘 발달되어 있어 트램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를 소지하고 있다면 베른의 시내 교통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합니다.
베른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도시입니다. 봄에는 장미공원의 꽃들이 피어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여름에는 아레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물든 베른의 공원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며,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눈 덮인 중세 도시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베른
베른은 현대적인 도시의 편리함과 중세 시대의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도시입니다.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8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켜온 베른은 여행자에게 진정한 스위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중세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 아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베른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자라면, 베른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스위스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해보세요. 베른은 여러분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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